장롱 깊숙이 넣어둔 물건을 오랜만에 꺼내볼 때가 있습니다. 몇 년째 쓰지 않았고 앞으로도 쓸 일이 없어 보이는데, 막상 정리하려니 손이 멈춥니다. "이걸 이 값에 넘기기는 좀 아깝지" 하는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똑같은 물건을 남이 그 값에 팔겠다고 내놓으면, 이번에는 "굳이 그 돈을 주고?"라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같은 물건인데 내 손에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값이 달라 보입니다. 「머니머니 착각 사전」 두 번째 이야기는 이 흔한 마음, 부존효과입니다.
부존효과란 무엇일까
부존효과(보유효과)는 어떤 것을 소유하게 되는 순간 그것의 가치를 실제보다 높게 평가하는 경향을 말합니다.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러가 이름을 붙인 개념으로, 이후 여러 연구에서 반복해서 관찰되었습니다.
핵심은 물건 자체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성능도 그대로고 시장에서 오가는 값도 그대로인데, 소유권이 내 쪽으로 넘어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머릿속 가격표가 올라갑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실험은 머그컵을 이용한 것입니다. 한쪽 집단에는 컵을 나눠준 뒤 얼마를 받으면 팔겠는지 묻고, 다른 집단에는 같은 컵을 얼마면 사겠는지 물었습니다.
두 집단이 마주한 것은 똑같은 컵이었지만, 파는 쪽이 부른 값이 사는 쪽이 내겠다고 한 값보다 뚜렷하게 높게 나타났습니다. 잠깐 손에 쥐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값이 달라진 것입니다.
왜 손에 쥐면 값이 올라갈까
이 현상은 대체로 세 가지 마음이 겹쳐 나타나는 것으로 설명됩니다.
1. 잃는 아픔이 얻는 기쁨보다 크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 같은 크기의 이득과 손실이라도, 사람은 손실 쪽을 더 크고 오래 느끼는 경향이 있습니다. 내 것을 넘기는 일은 '얻는 거래'가 아니라 '잃는 사건'으로 먼저 인식됩니다.
2. 기준점이 이미 옮겨왔기 때문입니다 : 소유하는 순간 그것이 있는 상태가 '기본값'이 됩니다. 기본값에서 벗어나는 변화는 그 자체로 부담스럽게 느껴집니다.
3. 물건에 이야기가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 언제 어떤 마음으로 마련했는지,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함께 저장됩니다. 값을 매길 때 이 이야기까지 함께 계산에 들어갑니다.
세 번째는 특히 중요합니다. 사는 사람은 물건만 보지만, 파는 사람은 물건과 함께 지나온 시간을 봅니다. 값이 어긋나는 것이 당연합니다.
은퇴자산에서 부존효과가 특히 위험해지는 순간
물건이라면 아까운 마음으로 끝납니다. 문제는 이 마음이 자산에도 똑같이 작동한다는 데 있습니다. 다음 같은 상황에서 자주 드러납니다.
1. 오래 보유한 자산일수록 냉정하게 보기 어려워집니다 : 오래 들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애착을 만듭니다. "그동안 함께 버텨온 것"이라는 감정이 붙으면 지금의 조건만으로 판단하기 어려워집니다.
2. 물려받은 자산은 판단이 더 무거워집니다 : 부모나 배우자에게서 이어받은 자산에는 금액으로 환산되지 않는 의미가 얹혀 있습니다. 그래서 정리해야 할 시점이 와도 결정을 미루게 되는 경우가 흔합니다.
3. 자기가 고른 것이라는 사실이 판단을 흐립니다 : 스스로 조사하고 고른 것일수록 "내 판단이 틀렸다"는 인정과 정리 결정이 한 몸으로 묶입니다. 그래서 자산을 판단하는 대신 자존심을 방어하게 됩니다.
4. 집처럼 큰 자산에서 격차가 가장 크게 벌어집니다 : 오래 살아온 집은 소유 기간도 길고 이야기도 가장 많이 쌓여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값과 시장이 매기는 값의 차이가 크게 벌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부존효과가 늘 나쁘게 작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주 사고팔지 않게 붙잡아주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다만 은퇴 이후처럼 자산을 꺼내 쓰는 단계에서는, 팔아야 할 것을 못 파는 쪽으로 기우는 것이 더 흔한 문제입니다.
내 판단인지 애착인지 가려내는 네 가지 질문
부존효과는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결정을 내리기 전에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 상당 부분 걸러낼 수 있습니다.
1. "지금 이걸 갖고 있지 않다면, 오늘 이 값에 새로 사겠는가?": 부존효과를 가장 빠르게 뒤집는 질문입니다. 답이 "아니오"인데도 계속 들고 있다면, 그 이유가 판단인지 애착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2. "내가 처음에 얼마에 마련했는지를 지우고 봐도 같은 결론인가?" : 취득 가격은 지금의 가치와 아무 관련이 없는데도 판단의 기준점 노릇을 합니다. 그 숫자를 가린 채 다시 보면 결론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3. "친구가 똑같은 상황이라면 나는 뭐라고 조언하겠는가?" : 남의 일로 바꿔 생각하면 소유의 감정이 빠집니다. 스스로에게는 관대한 논리도 남에게 설명하려 하면 허술함이 드러납니다.
4. "이 결정을 흔들리기 전에 미리 정해둘 수는 없었는가?" : 결정을 그때그때 감정 속에서 내리는 대신, 평온할 때 미리 기준을 정해두는 방식입니다. 시리즈 후반부에서 자세히 다룰 주제이기도 합니다.
감정을 이기려 하지 말고 절차를 두십시오
이런 착각을 다루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의지를 다지는 것이 아니라 절차를 만들어 두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일 년에 한두 번 날짜를 정해 보유 목록을 점검하고, 그때마다 위의 첫 번째 질문("오늘 새로 산다면?")을 모든 항목에 똑같이 적용해보는 식입니다.
핵심은 **점검하는 시점을 미리 정해두는 것**입니다. 마음이 흔들리는 날에 점검하면 결국 그날의 감정이 결론을 정하게 됩니다. 아무 일도 없는 평범한 날에 정해진 절차대로 살펴보는 것이 훨씬 안전합니다.
정리를 결심했다면 실제 절차와 세금·수수료 등은 금융회사나 세무 전문가의 공식 안내를 통해 반드시 다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심리적인 정리와 실무적인 정리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마무리
내가 가진 것이 더 값져 보이는 마음은 잘못된 것도, 부끄러운 것도 아닙니다. 살아온 시간이 물건과 자산에 남긴 자연스러운 흔적입니다. 다만 그 애착에 값을 매기는 것은 시장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집에서 가장 오래 들고 있는 물건 하나를 떠올려보십시오. "지금 갖고 있지 않다면 오늘 이 값에 살까?" 이 질문 하나에 어떤 대답이 나오는지 확인해보는 것만으로도, 자산을 볼 때 쓸 시선 하나를 얻게 됩니다.
다음 회에서는 이런 착각들이 왜 성격이 아니라 구조에서 나오는지, 그 밑바탕에 있는 어림짐작의 원리를 좀 더 넓게 살펴보겠습니다.
*본 글은 행동경제학 개념을 소개하는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특정 금융상품·종목·부동산의 매수나 매도를 권유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모든 투자 및 자산 처분 판단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본인에게 있으며, 실제 거래를 결정하실 때는 금융회사·세무 전문가의 공식 안내를 통해 반드시 다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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